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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력이란 무엇인가? - 시대가 원하는 '순하고 착한 것들'

by yeeon24 2025. 3. 24.

언제부터일까. 우리는 강한 사람을 동경하면서도, 그 강함에 지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논쟁에서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과감한 어조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문득,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웃고 있는 존재에게 끌릴 때가 있다.
그 존재가 주는 감정은 ‘감탄’이 아니라 ‘안도’에 가깝다. 바로 ‘무해력’이라는 키워드가 이 시대에 떠오른 배경이다.

오늘은 무해력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무해력이란 무엇인가? - 시대가 원하는 순하고 착한것들

 

‘세지 않음’이 가진 위로의 힘

 

‘무해력’이란 말 그대로 해를 끼치지 않는 힘이다.
힘이라고 하니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무해력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고,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으며, 관계를 지배하려 들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가지는 사람이나 콘텐츠, 공간, 물건을 뜻한다.
강하지 않기에 쉽게 소모되지 않고, 세지 않기에 오래 남는 것. 이것이 무해력의 본질이다.

 

요즘 우리는 자극의 홍수 속에 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극적인 뉴스가 스마트폰 알림으로 울려대고, 소셜미디어에는 끊임없이 논란과 이슈가 올라온다. 현실은 불안하고, 타인의 목소리는 커지기만 한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극 없는 편안함'을 갈망하게 된다.
그래서 무해한 사람, 무해한 콘텐츠, 무해한 공간에 마음을 둔다. 그들은 말이 적고, 주장하지 않지만, 존재만으로 주변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것이 이 시대가 무해력을 ‘원하는’ 이유다.

 

무해력의 얼굴들: 콘텐츠와 사람, 일상 속 무해함

무해력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 모습을 일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콘텐츠다. 최근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끄는 콘텐츠들을 보면 하나같이 '자극'이 적다. 조용한 브이로그, 혼자 밥을 차려 먹는 영상, 반려동물과 하루를 보내는 일상.
'뭔가 엄청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모습'만으로도 시청자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다.

한편 무해력은 ‘사람’의 매력으로도 드러난다.
무해한 사람은 대체로 말수가 적고, 상대의 말에 리액션을 잘 해주며, 판단하지 않는다. 말투는 부드럽고, 자기 생각을 말하더라도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되묻는 식이다.
이들은 경쟁보다 공존을 원하고, 가르치기보다 함께 머무르기를 택한다. 그래서 그들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위로받는다.

또한 무해력은 공간이나 물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파스텔톤 인테리어, 우드 소재 가구, 식물로 가득 찬 거실, 투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소품들.
모두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자극이 없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나는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좋아’라는 감정을 얻게 된다.
무해한 것들은 대체로 ‘나를 바꾸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있는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한다.

 

우리는 왜 무해한 것을 원하게 되었을까?


무해력이 트렌드가 된 데에는 단순히 콘텐츠의 피로도가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성과 중심적이고, 경쟁이 만연한 구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공부든 일이든 인간관계든 끊임없이 비교되고 평가받으며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무기력'과 '소진'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자극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존재'는 굉장한 위로가 된다.
무해한 것들은 우리에게 쉼을 주고, 나도 누군가에게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MZ세대의 정서다.
이 세대는 부드러움과 다양성을 중시하고, ‘세지 않은 삶’을 선호한다. 성공이나 부를 좇기보다는 ‘나다운 삶’과 ‘나의 속도’를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무해력은 이들에게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무해하다는 건 무기력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강하지 않아도 충분히 소중하고, 소란스럽지 않아도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무해력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따뜻한 반향이다.
남을 밀어내지 않고도 중심이 될 수 있고, 소리를 내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해주는 개념이다.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비폭력적인 존재감’의 가치, 그 섬세한 아름다움이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다.